2. 안전을 위한 법제도와 행정규제
사회적 안전을 위한 행정의 역할은 무엇인가? 행정제도를 비교적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도로운송과 소비자안전을 중심으로 행정규제와 안전성 확보에 대한 개론적 차원에서 전체를 조망해 본다.
가. 민사법·형사법과의 관계- ‘예방사법’으로의 행정규제
행정법을 예방사법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이는 기존 민사법·형사법에 의한 사후적인 손해배상이나 형벌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분쟁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행하는 사업적 활동, 혹은 상품 선택 과정에서 각각의 행위 주체는 활동의 자유,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사회에 위험을 끼칠 수 있는 활동이라면 그에 대해 행정이 선제적으로 규제를 하고 사회의 위험을 합리적인 범위내로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에 의한 거래관계의 규범을 규율하는 것은 민사법의 영역이다. 거래관계를 규율하는 계약법의 영역에서는 예를 들면 매매의 목적물이 문제가 있다면 매수인이 매매계약의 해제를 하거나 매도인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또 계약체결시의 의사표시에 문제가 있다면 (착오, 사기 등) 계약을 해지할 수가 있다. 또 계약관계가 아닌 경우에도 불법행위법에 의해 구제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민법의 불법행위 규정의 요건을 만족한 경우에는 불법행위를 제공한 측에 손해배상의무가 발생한다.
또 형사법에 의한 대응도 있다. 특히 안전성이 결여된 재화나 용역으로 인해 사람에게 신체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상해죄나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들 민사법·형사법의 규범은 사고 등이 발생한 후의 사후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행정규제는 사전에 분쟁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예방사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럼 행정규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는가. 행정법은 사회에 위험을 미칠 수 있는 활동을 감시하고 이를 일률적으로 법적 금지 조치를 취하거나 혹은 그러한 활동을 하려는 자에게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정 요건하에서 인·허가를 부여하고 이를 준수한 자에게만 금지를 해제하는 등의 법제도적 시스템을 말한다. 먼저, 인·허가를 위한 요건으로 지켜야 할 안전기준이나 시험을 부과함으로써 안전성을 확보한다. 물론 인·허가 이후의 안전기준의 미준수는 바로 인·허가 취소 사유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행정의 역할은 실생활에서 피해가 발생하기 전부터 대응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고의 사전예방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행정은 사후적인 대응도 한다.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사회적 문제와 같이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의 구제는 물론 필요에 따라서 향후 동일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해야만 하는 역할도 한다. 그 일환으로 행정은 조사권한을 활용하거나 사고 유발자에 의한 보고 의무를 통해 사업정지명령이나 상품회수(리콜)명령 등을 내리기도 한다.
나. 안전을 위한 행정 규제
이처럼 행정권한은 시민의 권리·자유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는데 거기에는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행정규제를 염두에 둘 경우 근거가 될 법률은 각각 목적과 대상이 다르며, 현실적으로는 여러 규율이 상호 연계되어 있다.
도로교통을 예로 들면, 도로상의 교통규범은 도로교통법에서 정해진 것으로 자동차 운전이라는 위험한 행위에 대해서 운전자라는 사람에 착안한 허가제이다 (자동차운전면허). 이 제도에 따라 자동차를 도로에서 운전하려면 먼저 운전시험에 합격하고 행정기관에서 발급하는 면허증을 받아야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면허증이 없는 무면허운전은 도로교통법상 처벌될 범죄이다.
택시나 버스, 트럭 운송 등 도로상에는 사람이나 화물을 이동시킬 목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 사업자는 사업에 착안한 규제를 받고 있다. 사업에 착안한 규제는 여러 분야에 걸쳐 있으며 운수사업법, 보험업법 등 흔히 業法이라는 법률이 즐비하게 열거될 수 있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물건에 착안한 행정규제도 있다. 자동차의 경우 자동차가 정확하게 검사를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차량검사제도가 있고, 식품이나 전기용품처럼 제조나 판매, 수입에 대해 안전심사기준을 강제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칫 위험성이 있는 사물이 사용되는 장소에 대한 규제도 있다. 공공 도로에 대해서는 도로법에 의해 도로관리자를 선임하여 도로의 유지관리를 하게하고 있다. 사업자에 의한 시설 등의 관리에 의해 이 기능을 담당하게 하는 것도 있다. 철도사업자에 대해서는 업법인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약칭 철도산업법) 중에 유지관리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다. 소비자법제에 있어서 민사법·형사법·행정법의 연계
행정규제 중에서도 특히 소비자와 관련된 안전성 제도는 복잡하고 다양한 파생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안전과 관련된 제도의 기본 철학은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의 정보의 질 및 양 그리고 교섭력 등의 격차’에 두고 있다. 그러기에 소비자 관련 법제도는 지금까지 살펴 본 민사법·형사법·행정법의 결합에 의한 대응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피해는 일반적으로 ‘유인분야·표시분야·안전분야’로 대별된다. 유인분야는 거래내용이 적절하게 설명되지 않음으로 인한 피해, 표시분야는 상품에 부착된 품질이나 원산지에 대한 정보의 오류나 분쟁이 발생하기 쉬운 표현이 원인이 되는 피해, 그리고 안전분야는 식품이나 제품, 시설설비, 서비스가 안전성을 결여하고 있거나 예상 가능한 오사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 등에 의한 피해이다.
소비자법제도의 특색은 전술한 바와 같이 소비자와 사업자와 정보격차 내지는 교섭력 격차에 주목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로 주로 민사법의 특별법 형태로 제정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소비자계약법과 제조물책임법이다. 소비자계약법은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된 계약에 대해 부적절한 유인행위에 의해 소비자가 오인·예상하지 못한 계약 내용에 대해 소비자의 취소권을 정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할 거래 조항을 무효로 하여 민사상의 효력을 변경한다. 또 이들 권리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격소비자단체에 부당한 유인행위나 부당조항의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소비자단체소송을 인정한다. 소비자계약법은 미국 J.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연두교서에서 언급한 소비자보호에 대한 4대원칙의 하나인데 이를 각 국가 혹은 단체가 법제도로 체계화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제조물책임(PL)법은 제조물의 결함에 의해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경우 제조업자등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불법행위법의 특칙으로 결함(缺陷)을 제조상의 결함, 설계상의 결함, 표시·경고상의 결함으로 분류하고 있다. 결함의 일반적 정의를 제조물이 통상 갖추어야 할 안전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고, 이를 기존 과실(過失)의 개념과 대비시켜 피해자의 주관적 입증책임을 결함이라는 객관적 입증책임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민법의 불법행위책임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소비자안전과 관련한 행정제도의 변화도 특정 재화의 위험성에 대해 소관 행정관청이 전담해서 관리되던 수직적 형태에서 점차 소비자안전의 보편적 가치 중심의 수평적 형태로 관리 체제가 전환되는 등 기술적 융합을 통한 사고원인의‘분석-규명-대책’의 일관된 시스템 구축은 행정 체제의 발 빠른 대응 태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