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한국경제 이끈 산업의 핵

나경수 (사)전자·정보인협회 회장

2018-10-23     김영환 기자
나경수 전자정보인협회 회장

철강업(鐵鋼業)이란 철광석으로부터, 극히 일부는 사철로부터 선철·철강 및 강재를 만드는 산업을 말한다. 철은 산업 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생산재(生産財)이며 조강(粗鋼)의 1인당 소비량은 그 나라의 소득수준과 거의 비례한다. 최근에는 플라스틱·알루미늄 등 새로운 소재와의 경합이 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8년에 포항종합제철(주)의 설립으로 근대철강업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1982년도의 조강생산은 1,200만 톤으로 세계 15위를 차지하였다. 원료인 철광석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석회석·백운석 등의 용제(熔劑)는 전량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광양(光陽)제철소가 완공되면서 생산량은 2,000만 톤이 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강철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철강업(鐵鋼業)이라 하는데, 제철업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기간(基幹)산업이며 선철과 강철 생산 외에, 각종 강재(鋼材)의 제조를 주요한 업무로 한다.

이 사업에 주로 일관해서 종사하는 것은 고로메이커(高爐maker)라고 불리는 큰 기업체들이며 철광석→고로선(高爐銑)→전(轉)·평로강(平爐鋼)·보통강압연강재(壓延鋼材)의 순서로 철강의 대규모적인 생산을 행하고 있다.

철강업에는, 그 외에 강철의 생산 이후만을 전담하는 업종으로 제강업이 있으며, 철강업에 종사하는 기업은 다음의 4종으로 나눠진다.

첫째, 평로메이커로 선철·설철(屑鐵)을 원료로 하여 제강(製鋼)과 압연을 행한다.

둘째, 단순 압연메이커로 강괴(鋼塊)·반성품(半成品)을 구입해서 그것들의 압연만을 한다.

셋째, 신철(伸鐵)메이커인데, 고철을 구입해서 그 재압연(再壓延)을 행한다.

넷째, 특수강 메이커로 선철·파쇠를 전기로(電氣爐)에 장입(裝入)해서 전기로 강괴(電氣爐鋼塊)를 만들고, 다시금 특수강 압연강재를 제조한다.

철강업의 역사는 길다. 철의 생산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생산의 기술은 오랫동안에 매우 서서히 진보해 왔다. 철강업이 근대 사업으로서의 기반을 굳힌 것은 18세기 이후이며, 특히 19세기 후반으로 들어와서 코크스로(爐)에 의한 선철, 전로(轉爐)·평로(平爐)에 의한 강철의 생산방식이 확립된 이래의 일이다.

그 후는 군사적 요청도 첨가되었지만, 산업의 고도화와 생활수준의 향상이 철의 수요(需要)를 증가 시켰고 한편 제철기술도 굉장한 발전을 함으로써, 제철업은 금일과 같은 융성을 보게 되었다.

제강업의 입지(立地)는 어떠한가?

13세기에 들어 갈 때까지는 제철로(爐)의 송풍은 사람의 힘에 의한 풀무에 의존하고 있었다. 또 제철에는 다량의 숯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한 지역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목탄(木炭:숯)의 양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제철은 산간의 삼림(森林)지구에 분산해서 행하여 졌다. 13~14세기에 이르자 제철로(爐)의 송풍 동력으로서 물레방아를 이용하게 되고, 거기에서 산간(山間)의 제철소는 하천(河川)에 따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18세기에 이르자, 제철에 석탄으로 만들어진 코크스가 사용됨과 동시에, 송풍력에는 증기기관(蒸氣機關)이 쓰이게 되었다. 19세기의 초엽에는 고로(高爐)로 1톤의 선철을 만드는데 5~6톤의 석탄을 필요로 하고, 철강제품으로 하기까지에는 제품 1톤당 10톤의 석탄을 필요로 하였다. 이에 대해 철광석의 소비는 선철 1톤당 2~3톤이었으므로, 철강업의 입지는 서서히 산탄(産炭)지역으로 유인(誘引)되어 갔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전로(轉爐)·평로(平爐)·코크스로(爐) 등의 새 기술이 개발되고, 석탄의 소비가 저하됨에 따라서 산탄지에 대한 철강업의 의존도는 약화되었다. 따라서 제철소는 탄전, 또는 철광산의 어느 쪽인가에 인접해서 마련되게 되었다.

근년에는 미국 및 유럽의 주요 제철국에 있어서는, 철광석의 자급도(自給度)가 점차 저하됨으로써 대량의 광석을 해외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제품판매를 위한 시장이 가까워야 했다. 또 원료의 대량수송에 편리한 임해(臨海)지구에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철강 산업이 시작하여 지금까지 발전의 긴 여정을 걸어 온지 어언 60년이 훨씬 지나 7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민족의 비극 6·25사변을 거치면서 황무지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출발해 금년 현재 조강산업이 6,606톤에 달해 세계 6위에 우뚝 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일구어 냈다.

우리나라의 철강 산업은 8·15해방을 맞아 일제의 강점기를 벗어나면서 적산(敵産) 국유화 정책 등을 통해서 1948년 대한중공업공사(현 현대제철)를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2년 후 1950년 터진 6·25사변이라는 초유의 비극적 사태를 치르면서 훼손되고 파괴되는 비운을 겪었다.

전후 국내 철강 산업은 부흥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는데 기존공장의 복구·가동·재건 및 1963년 부산제철소(현 동국제강)의 최초 전기로의 설비를 도입하는 등 다수의 민간 기업들의 활발한 진출이 잇따르면서 철강 산업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의 생산설비는 쇳물을 생산하는 상공정 보다는 제품을 생산하는 하공정 압연설비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상(上)-하(下) 공정간 불균형이 심해 정부 차원에서 상공정 확충을 목표로 일관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정책차원의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졌다. 동시에 민간 차원에서는 다양한 생산기술 및 제품 생산을 모색하는 등 국내 철강 산업의 발전기반을 조성하게 되었다.

다른 여러 선진국들이 거쳤듯이 우리나라의 철강수요가 정점을 지나 바야흐로 성숙기에 들어서고 있다. 중국을 포함하여 인도가 신흥 철강강국으로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앞으로는 안팎으로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내 철강 산업은 한국전쟁, 제1·2차 석유파동, IMF 외환위기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수차례의 난관을 극복하며 경이로운 고도성장을 이룩해 왔다. 이제 우리는 제2의 도약을 기획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철강인들의 노력, 땀 그리고 불퇴전의 용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예상되는 환경규제 강화와 원료확보 경쟁심화 그리고 국내·외의 수요증가세 둔화와 같은 철강 산업의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차제에 성공적인 제2의 도약과 안정적인 선진화시대 진입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