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Pyrenees 山脈)은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국경을 이루는 산맥이다. 비스케이 만(Biscay 灣) 남동쪽 구석에서부터 지중해의 크레우스 곶까지 동서로 뻗고 있다.
1659년 프랑스와 에스파냐 사이에 체결된 평화조약이 피레네 조약(Pyrenees條約)이다.
이 조약으로 30년 전쟁 이래 양국의 대결이 일단 해결되었고,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Felipe) 4세의 왕녀 마리아 테레사와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결혼이 결정되어 아르트아(Artois) 지방 등이 프랑스에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는 예술에서, 기성의 미학이나 도덕과는 관계없이 이성(理性)의 속박을 과감히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비합리적(非合理的)인 것이나 의식(意識)속에 숨어 있는 비현실의 세계를 즐겨 표현하려는 회화(繪畵)·시(詩) 등의 예술혁신운동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다다이즘(Dadaism:허무주의)에 이어서 일어났다.
쉬르리얼리즘 또는 초사실주의라고도 칭하는데, 초현실적(超現實的)이란 현실을 넘어선 것 또는, 초현실주의의 속성을 띤 것이다. 반대로 현실주의(現實主義)란 이상에 구애 받지 않고, 현실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이를 리얼리즘(realism)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상주의(理想主義)와 대비된다.
시각(視覺)이란 외계(外界)의 빛이 자극하여 일어나는 감각을 말한다. 사람의 경우는 빛이 눈의 망막(網膜)을 자극하고, 그 때 생긴 신경 흥분이 대뇌의 시각야(視覺野)에 전달될 때 일어난다. 명암각(明暗覺)·색각(色覺)·형태각(形態覺)·운동각(運動覺)을 포함하는데, 시감(視感)이라고도 한다.
시각 디자인(視覺 Design)은 도형이나 화상(畵像) 또는 디스플레이 등 시각적 표현에 의해 효과를 꾀하는 디자인인데, 비주얼 디자인(Visual Design)이라고도 한다. 또 시각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지니는 것을 시각언어(視覺言語:Visual Language)라 한다.
수화(手話)·상징 도형·표지 따위이다. 이와 관련하여 시각예술(視覺藝術:Visual Arts)은 회화·조각 등 시각만으로 감상하는 예술의 총칭이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은 한평생을 일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시각예술로 승화했다.
작품의 특색은 조화되지 않는 사물을 화면에 병치함으로써 이상하고 기괴한 효과를 나타냈는데 이러한 작품에 ‘여름의 계단’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있다.
그림으로 ‘정든 땅을 떠나 타향 속에서의 느낌’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낯섦)을 시도해 전후 팝아트는 물론이고 연극·영화·건축·광고 등 모든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환상과 공상, 그 심층에 가로 놓인 황량한 파괴감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1959년에 제작한 ‘피레네의 성’도 육중한 바위섬이 하늘에 떠 있게 배치해 놓아서 시각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자연법칙을 극적인 발상으로 넘어가기 위해 거대한 바위를 등장시킨 것이다.
지금까지 시공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관점을 뒤집고 유니크한 집념과 집착으로 시공간의 상대성을 색다르게 시각화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 위에는 옅은 황토색으로 채색한 중세양식의 성곽이 육중(肉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성곽의 형태는 이미 그 자체로서 기존의 현실의 세계에서 완연히 분리된다.
어쩌면 지난 20세기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고립되어만 가는 쓸쓸한 현대인의 황량한 사회 속에서의 외로움과 소외감에 대한 일종의 은유(隱喩)일 것이다.
일본의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하늘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외로운 현대인의 심금을 울렸는데, 앞으로 다가올 가공할 디스토피아의 미래사회를 살짝 예고편으로 보여주었다.
유토피아의 반대되는 디스토피아(Distopia)는 역(逆)유토피아라고도 한다. 가공의 이상향 즉 현실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지방>을 그리는 유토피아의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를 비판하는 픽션을 그림으로써 표출하였다.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내지는 예술의 전반적인 사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있는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 디스토피아는 현대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 사회에 확대 투명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분명히 지적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유효한 방법이었다.
현대의 복잡다기한 사회상황 속에서 미래를 진지하게 논하려는 사람은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의 양쪽 시점을 모두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