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존 시스템과 신기술에의 대응 (상)
그럼 서비스 로봇과 자율주행차라는 미래의 로봇·AI 제품에 대한 행정규제의 검토를 살펴보기 위해 현재의 법제도가 어떻게 체계화되어 있는지를 보자. 여기서는 이들의 법제도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문제도 염두에 두고 이들의 법제도가 신기술과 어떻게 보조를 맞추고 있는지 혹은 어떠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검토한다.
가. 일상생활 속의 제품의 안전성
AI가 탑재된 기기나 로봇은 그 성질상 전기제품으로서 사물의 측면을 가지고 있고 제어나 판단을 위해 소프트웨어가 조합된 제품이다. 또 이들의 능력을 확장하거나 다른 기기와의 조정을 꾀하기 위해 네트워크에 접속될 제품이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물이나 소프트웨어, 그리고 네트워크 접속에 대해 지금까지 어떻게 대응하여 왔는가를 보자.
(1) 전기제품·소비생활용 제품의 안전규제
일반 일상생활에 들어와 있는 제품에도 상해나 사고로 연결되는 제품이 있다. 또 일반가정이나 상점 등에 사용되는 제품 중에 비교적 안전성이 높은 전기 제품에도 과거에는 조잡한 제품의 유통에 의한 화재사고 등이 발생하는 등 본질적 위험이 감추어진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일반소비자의 생활에 제공되는 일반용 전기제품 중에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약칭 전안법)이 제정되어 있다.
이러한 제품의 안전성 확보에 대해서는 민간사업자의 자주적 활동에 의한 안전확보와 공정한 경쟁도 중요하다. 전안법은 사업자 스스로가 강구할 안전확보 조치의 내용을 적절하게 표시하게 하여 소비자가 구입할 경우 판단할 수 있도록 안전인증 제도를 마련해 놓고 있다.
동 법은 1조 목적규정에서‘전기용품 및 생활용품의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여 제조·수입을 통해 유통되는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여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시장에 제품을 공급할 경우 위험의 사전 예방을 위한 행정작용은 수입단계에서 신고의무, 제품의 기술기준의 적합의무, 판매단계에 표시의무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고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행정에 정보를 제공하고 나서 개시하면 된다는 점에서 허가제보다 사업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법적 제도이다. 그리고 신고를 한 제품을 제조·수입 판매를 한 경우에는 국가가 정한 기술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그리고 제품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사업자 스스로가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검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검사 완료의 제품은 기술기준에 적합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해당 마크를 부착하여 판매한다. 그리고 해당 마크를 부착하지 않은 제품의 판매 및 전시는 금지되어 있다.
무표시 제품이나 표시는 되어 있어도 기술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하면 국가기관(주로 국가기술표준원)에 의한 보고·현장검사가 이루어지고 조치명령(개선명령, 위험 등 방지명령 등)의 대상이 된다. 또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도 이들 감독권한이 행사된다. 이러한 명령 등의 위반에 대해서는 벌칙 등 규제가 있어 이행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 제품 사용년수의 경과로 인해 위험성이 있는 특정보수제품에는 정기점검 체제를 구축해 위험의 사전 예방도 행정작용을 통해 위험의 조기 수습을 사업자에게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다.
(2) 사물과 소프트웨어와의 결함·네트워크화에 대한 민사책임 적용 여부
IoT가 발달함에 따라 민사책임에 관한 규범과의 관계도 문제가 된다. 앞서 언급한 제조물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에 의해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에 관련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업자 등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해 정한 것으로 소비자피해의 구제를 촉진한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되고 있듯이 동법은 대상이 될 제조물을 ‘제조 또는 가공된 동산’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그 자체는 대상에서 제외 된다. 또 소프트웨어나 통신 서비스에 대해서는 사물의 판매와는 달리 가치관이 있어 서로 다른 법체계가 적용되어 온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제조물책임법이 적용되지 않고 대부분 약관으로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자기책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품질보증은 Best Effort형(뜻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으로 되는 것이 많고 그 경우에는 완전한 동작을 보증하고 있지 않다. 고장에 대한 생각도 소프트웨어의 버그나 통신장해가 발생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오히려 보안 리스크도 생각해 보면 업데이트에 의한 대응이 이용자 측에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데이터의 교환이 자주 발생하고 당사자가 다수라는 것만이 아니라 개인에 관한 데이터가 대량으로 수집될 리스크도 있다.
이들은 사물의 세계에서 발생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발생한다고 해도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인터넷의 세계에 적응돼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친화성이 있지만 사물의 세계에만 적응된 사람에게는 그다지 적응하기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IoT의 발전에 따라 이들 문제가 사물의 세계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특징을 지금까지 사물 세계의 논리로 규율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규범을 제시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다만 이러한 논의는 주로 민사규제를 염두에 둔 것이기는 하지만 민사규제도 행정규제도 법제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기에 이미 IoT에 대해 민사책임과의 관계에서 지적되고 있는 점은 행정규제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3. 기존 시스템과 신기술에의 대응 (하)
나. 도로교통을 둘러싼 법제도
운전자의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측면의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위험이 내재하고 있으며, 도로교통에서는 이 위험성에도 정(正)의 영향과 부(負)의 영향이 다양한 법적 체제와 복수의 주체가 혼재한다. 다음은 현행 도로교통안전에 관한 법제도의 기반아래 자율주행과 같은 신기술에 관한 법정책상의 대응을 보기로 한다.
(1) 운전자, 자동차의 사용자를 중심으로 한 법적 체계
도로교통에 관한 체제는 운전자라는 사람에 착인한 허가제 (도로교통법), 택시, 버스, 트럭 운송 등 사업에 착안한 규제 (도로운송법, 화물자동차운송사업법), 차량이라는 위험한 사물에 착안한 규제 (도로운송차량법), 장소에 대한 규제 (도로법)가 혼재되어 있다. 또 최근 과로운전에 의한 사고의 발생 등을 감안해 운행관리에 관한 규제나 사고대책 등의 규제도 주목되고 있다.
우선, 운전자에 대한 규제를 설정한 도로교통법의 운전면허제도는 허가제의 틀을 중심으로 갱신제도, 벌칙제도, 운전자의 의무규정, 교육 등을 부과함으로써 운전자 선별을 하고, 교육·자질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교통사고에 관한 운전자의 손해배상의무와 보험제도(민사책임), 도로교통법·자동차운전치상행위처벌법의 형사책임과 맞물려 운전자에 책임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운전자의 조작으로 가동하는 현재의 자동차 구조를 반영한 것 외에 도로교통에서 이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험이라 할 수 있다. 즉, 운전자의 이동 방법에 자유를 보장하면서 그 수단으로 자동차 운전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그 책임도 또 운전자에 귀속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설계가 된 배경에는 도로교통도 하나의 특색이 있다. 이는 운전자는 상호 자유라는 측면에서 다수의 서로 모르는 주체가 위험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 그 바로 옆에는 보행자 등 다른 주체도 혼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자동차 운전자가 공평한 자유를 가지면서 한편으로 책임을지지 않는 주체라면 우리 일상 사회에서 도로교통의 신뢰성은 흔들리게 된다. 다만 이를 배경으로 도로교통법의 운전자에 관한 규율은 사업성을 전제로 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사물에 착안한 안전성확보, 차량의 안전성확보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도로운송차량법은 자동차의 등록제에 더해 안전기준에 적합하도록 유지할 의무를 자동차의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정기적으로 법정의 점검을 받은 자동차에 대해서 자동차검사증·안전성 기준확보를 자가용·사업용 운행자 모두에게 두고 이들을 차량에 표시시킴으로써 외부에서 보고 검사 완료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체제를 확보하고 검사증이 없는 차량의 운행을 금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도로공간에서 안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자 함이다.
도로운송에 관한 사업자 규제는 이들의 규제에 더해 도로운송사업의 운용을 적정하면서 합리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규제를 부과하여 수송의 안전을 확보하고 이용자의 이익의 보호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에 대해 허가제를 중심으로 하여 운임에 관한 약관규제 등 거래 질서에 관한 규제도 포함된다. 특히 운행관리·운행의 안전확보의 관점에서 주행거리의 제한이나 운행관리자를 둘 것 등 운행의 관리에 관한 규율도 있다. 사고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허가제나 장관에 의한 조치명령 등이 활용되고 있다.
다만 사고발생시의 규율에 대해서는 항공·철도·선박 교통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가 독자의 행정조사권한을 가지고 사고원인의 규명에 임하고 있지만 도로를 그 대상으로는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도로교통의 장소인 도로 그 자체에 대해서는 도로법에 근거하여 도로의 종류에 따라 도로관리자가 결정되어 있다. 도로의 하자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법상의 영조물의 설치 또는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행정소송의 길이 있다.
이처럼 도로교통을 둘러싼 법적규제는 운전자·자동차의 이용자를 중심으로 하면서 운송사업자, 정비사업자, 도로관리자 등 다수의 관여자가 관련되어 있는 것이 현재의 관련 법제도의 현실이다.
(2) 기술혁신의 방향 - 자율주행 전동휠체어는 ‘보행자’인가?
자동차의 운전자, 자동차의 이용자를 선별하여 책임을 집중시키는 도로교통법의 사고가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운전자가 운전조작을 적확하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보행자 등과는 구별한 도로를 주행한다고 하는 판단이다. 기술의 진보와 맞물리면서 갈등관계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전동휠체어이다. 전동휠체어는 단독 보행이 곤란한 사람이 보행자와 마찬가지로 생활공간에서 생활하기 위한 장치이다. 모터로 구동하는 휠체어와 건강한 사람이 동일 공간에 혼재하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상황 하에서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우리는 전동휠체어를 현행법상 '보행자'로 보고 있기에 차도가 아닌 인도로 다녀야 한다.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전동 휠체어를 이용자 신체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의 도로교통법은 전동휠체어에 대해서는 속도제한 (시속 6KM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나 형상 (크기의 제한, 예리한 돌출부가 없을 것 등)에 대해서 일정 규격을 정한 후에 보행자로서 취급하는 조건부 이용을 선택했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차체의 크기나 속도제한만이 아니라 자동차 또는 원동기부착 자전거와 외관을 통해 명확하게 식별이 가능할 것을 요구하고 있듯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떻게 보이는가를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보행자와의 혼재를 전제로 고려해 보면 일정 이상의 스피드를 내지 않는 것을 주위로부터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또 운전자가 고령자나 장애자라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규율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전동 킥보드가 원동기 장치 자전거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장애인의 발이 되어 줄 자율전동휠체어의 출현이 도록교통의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것인지 행정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