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지설(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지역 주민 의견 수렴 결과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르면 8월부터 맥스터 추가 건설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월성 원전 2~4호기 맥스터는 2022년 3월쯤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제때 증설하지 못하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맥스터가 증설되면 대구·경북 전력의 21.9%를 만드는 월성 원전 2·3·4호기를 오는 2022년 3월부터 멈춰야 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재검토위)는 24일 오전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2·3·4호기의 맥스터 증설 여부에 대한 지역 의견 수렴 결과 81.4%가 증설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재검토위가 의견 수렴 결과를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하면 산업부는 증설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산업부는 그동안 주민 의견 수렴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결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는 정부 결정 즉시 증설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날 재검토위는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맥스터 추가 건설 여부에 대한 찬반 조사 결과(3차 설문 기준) 찬성 81.4%, 반대 11.0%, 모르겠다 7.6%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맥스터 증설 여부에 대한 지역 의견 수렴을 위한 시민참여단은 총 145명으로, 원전 인근 지역인 동경주 3읍면(양남면·양북면·감포읍) 주민과 경주시민으로 구성됐다.
재검토위는 "원전 5㎞ 이내 소재 3개 읍면 거주민과 경주시내 거주민을 나이, 성별, 직업, 학력, 소득 수준 등으로 구분해도 모든 영역에서 찬성 비율이 최소 65% 이상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재검토위와 월성 원전 지역실행기구는 지난달 27일부터 3주간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온라인 숙의 과정을 거쳤다. 이후 지난 18∼19일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종합 토론회를 열어 맥스터 증설 여부에 관한 여론을 수렴했다.
재검토위는 시민참여단에 맥스터 추가 시설에 대한 찬반 여부는 물론 ▲우리나라의 사용후 핵연료 습식·건식 저장방식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부와 전문가 등이 제공하는 정보를 얼마나 믿는지 ▲정치적 입장과 직업, 소득 수준은 어떤지 ▲숙의 과정이 의사 결정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등을 상세히 조사했다.
재검토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오리엔테이션 이후 3주간의 숙의 과정이 지날수록 시민참여단의 맥스터 증설 찬성 비율이 높아졌다. 지난달 27일 1차 OT 때 58.6%였던 찬성률은 지난 18일 2차 조사(종합 토론회 시작) 때 80%, 19일 3차 조사(종합 토론회 완료) 때 81.4%로 상승했다.
재검토위 관계자는 "1차 설문 시 '모르겠다'고 응답한 48명 중 35명이 3차 설문에서 '찬성'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시민참여단에 참여한 한 주민은 "숙의 과정에서 찬성으로 생각을 바꾼 주민이 여럿 있었다"고 전했다며 "찬성이든 반대든 시민참여단 누구나 그 이유를 남 앞에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신중하게 숙의 과정에 임했기 때문에 이날 결정에 대한 일방적 불복은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 찬성은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 방안 논의 이전에 격렬한 진통을 극복한 중요한 사례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최종 결정 과정이 남아 있지만, 산업부와 정부 부처 안팎에선 이날 경주 시민의 '증설 찬성 81.4% 민심'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가 증설을 결정하면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는 경주 양남면 면사무소에 맥스터 증설에 관한 공작물 축조 신고를 할 예정이다. 경주시가 신고를 수리하는 즉시 공사에 들어간다. 지난 21일 주낙영 경주시장은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은 시민의 뜻에 따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주민 찬성을 공식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2016년 4월에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맥스터 7기 증설을 위한 운영변경허가안을 낸 지 3년9개월이 지나서야 원안위는 승인을 해줬다. 지난 1월 원안위는 월성 2~4호기 맥스터 증설 운영변경허가를 해줬지만 공론화 과정으로 이어졌고 주민설명회가 세 차례나 파행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주민들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일환으로 ▲월성1호기 영구정지 ▲신한울 3·4호기 공사 보류 ▲신·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믹스 조정에 따른 원전 감축 결정 등을 하는 중에도 맥스터 증설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안전시설'로 믿었는데, 탈핵 단체의 반대 운동과 일부 주민의 변심 등으로 마을이 분열되는 일을 직접 겪었다.
이같이 격렬한 진통을 겪은 뒤 내린 '증설 찬성' 결정인 만큼 어느 주체도 이를 쉽게 뒤집진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재검토위는 3주간 숙의 과정을 마친 뒤 주민들의 찬성과 반대 의견은 물론 그 이유에 관해 상세히 제출받았다. 주민들 대부분 숙의 과정 이후 별다른 이견 없이 결과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숙의 과정에 참여한 양남면 주민은 "온라인 학교 수업을 듣듯 재검토위가 제공한 자료와 강의를 듣고 3주간 열심히 공부했고, 수강률이 너무 낮은 주민에겐 재검토위가 따로 연락해 수강률을 100%를 달성하도록 관리한 것으로 안다"며 "숙의 과정에서 의견을 바꾼 주민도 여럿 있는데, 찬성이든 반대든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주민들이 신중하게 결정한 결과인 만큼 대부분 결과에 수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당장 월성 원전 맥스터 증설 착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부는 이날 결과를 재검토위로부터 받은 뒤 관계 부처와 이해관계자, 울산시 등 월성 근처 인근 지역 주민 등과 논의한 뒤 최종 결정을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의견 조율 과정에 적어도 1주일 이상 걸릴 수 있고 다음달 초를 넘길 수도 있다"며 "신중하게 이해관계자와 논의할 것이지만, 산업부 차원에서 재검토위 전달 사항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다만 탈원전단체와 울산 등 경주 외 월성 인근 지역 주민 등의 반대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긴 어렵다. '탈핵'이란 명분 아래 월성 원전 맥스터 증설을 반대한 탈원전단체 및 주민들은 "증설까지의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를 인정하기 어려우니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의 결과는 엉터리이고 정부는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전날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투표 울산운동본부(울산 내 90여개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정당으로 구성)는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공론화 과정과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며, 무효화해야 한다"며 "산업부와 재검토위는 울산 시민을 배제하고, 경주 시민만을 대상으로 공론화를 진행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이번 공론화는 비민주적이고 졸속으로 진행된 엉터리"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은 이날 오전 11시10분 '비공개·일방적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규탄 정의당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기본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고 '맥스터 추가 건설'이란 목표를 짜놓은 뒤 논의 결과를 꿰맞춘 것 아니냐'라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