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2, 3, 4호기의 성능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데도 핵연료 저장공간이 없어 멈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올 상반기중에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당장 핵연료 임시 정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월성 2~4호기는2022년부터 가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경수 제9대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은 서울 모 식당에서 신년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나라가 세계 원자력발전 5위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용후핵연료 관리 대책마련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에너지전환정책 배경 중의 하나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3년 6월21일 방사성폐기물 및 원전해체 등 핵연료주기 분야 제반 연구진흥과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 및 국민수용성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사)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는 2020년 1월 6일 기준, 개인 2,506명과 법인 54개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원자력 관련 학회 중 2번째 규모다.
현재 방사성폐기물학회는 ▲핵주기정책·규제 및 비확산 ▲사용후핵연료 처분전관리 ▲고준위폐기물 처분 ▲중저준위폐기물관리 ▲제염해체 ▲방사선환경 및 안전 ▲방사화학 등 7개 연구분과를 두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학술단체 협의회 총괄사무국(회원기관 :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한국원자력학회, 대한지질학회, 대한지질공학회, 한국암반공학회)이기도 하다.
또한 방사성폐기물학회라는 명칭에 걸맞게 Journal of Nuclear Fuel Cycle and Waste Technology(국문명 : 방사성폐기물학회지) 발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원전해체 등 핵연료주기분야 전반에 관한 정기 학술행사(연 2회) 및 비정기 워크숍 및 심포지엄, 회원 역량강화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 회장은 "1987년부터 방사성폐기물처분 연구에 종사하면서 지금까지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부지 선정 및 부지특성평가,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R&D,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저준위폐기물은 1986년 사업에 착수한 후 19년 만에 부지를 결정했고, 30년 만에 폐기물 처분이 가능하게 됐다"면서 "1978년 원전 운전이 시작한 이래 38년 만인 2016년 7월 사용후핵연료 국가관리 기본계획이 최초로 공표된 바 있으나, 이 기본계획은 이해관계자 모두의 참여가 부족했다는 지적과 에너지전환정책 시행에 따라 관리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회고했다.
우리나라는 경주 월성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했지만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폐기물 처리방안은 없는 실정이다. 2016년 7월 사용후핵연료 국가관리 기본계획을 공표했지만 시민단체 등이 이해관계자 참여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제기하면서, 정부가 기본계획 재검토위원회를 통해 재검토 과정을 거치고 있다. 재검토 결과는 상반기 중 나올 전망이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두고 있지만 포화가 임박했다. 특히 월성원전 2·3·4호기는 임시 저장시설인 '맥스터'가 93% 이상 채워져 내년 11월 꽉 찰 예정이다. 이때까지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영구 처분방안 역시 기본계획이 4년 가까이 늦춰지면서 차질이 우려된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저장기술 연구개발부터 방식·부지 확정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현 정부가 전 정부에서 수립한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전체 일정이 늦춰졌다.
김 회장은 "수명이 다 된 발전소가 늘어나는데, 원전해체를 위해서라도 저장시설과 방안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지금도 늦었는데, 더 늦추면 국가·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시급한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문제는 결정을 미루면서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을 작년말 전격 결정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경수 회장은 "그동안 부처별로 독립적으로 기술개발을 추진해 오던 방식에서 탈피, 이제부터는 범부처적으로 힘을 모아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긴밀한 협업을 시작하게 된 기반을 마련한 것은 원자력연구개발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칭)원전해체기술개발사업이 올해 상반기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하게 되며, 이 역시 2개 부처(산업부, 과기정통부)가 공동으로 기획, 해체기술 자립을 위한 준비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원전사후관리정책의 투명성, 신뢰성과 더불어 이와 같은 기술개발사업은 국민의 수용성 향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학회에서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준위방폐물 임시저장시설(맥스터) 건설과 관련된 물음에 대해서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확보는 원전의 안정적 운영과 원전의 해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2021년 월성원전을 시작으로 포화상태에 이르고, 원전해체를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를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맥스터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면 월성 2~4호기도 발전을 정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한국수력원자력측이 운영변경허가 신청을 한 상태이며, 아직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결론을 나지 않은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차질없이 건설이 진행되더라도 약 19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올 상반기 중에는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윤종일 방사성폐기물학회 부회장(KAIST 교수)은 "맥스터는 이미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증설에 문제가 없는데 원안위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면서 "이대로면 보일러가 안전하고 연료도 많은데 연탄재를 버릴 곳이 없어서 보일러를 끄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윤 부회장은 이어 "지금 결정해도 인허가를 거쳐 건설작업을 하려면 내년말 가동이 촉박하다"면서 "고리 1호기 역시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해결 안 되면 해체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최악의 경우, 핵연료 처리방법이 없어 멀쩡한 원전이 가동 중단된 채 사실상 핵연료 저장·처리시설로 운영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일본, 스위스 등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 습식 저장시설에 저장하다 외부 건식 시설에 50년 정도 저장한 후 영구 처분시설로 옮기는 방안을 수립했지만 우리나라는 원전 내 임시 저장 이후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세대들은 원자력에너지를 쓰지도 못한 채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고, 원래 목적에도 맞지 않은 핵연료 저장시설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윤종일 부회장은 "고리원전은 바로 옆에 건설되는 신고리원전의 저장시설을 임시로 쓰는 방안이 있지만 월성원전과 영광원전은 내부 저장시설 확장이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수명이 끝나는 원전의 계속운전이 결정되지 않으면 10년 내에 약 10기의 원전이 가동 중단되는데, 핵연료 처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과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핵연료 처리문제는 국가와 국민이 향후 30~50년간 노력해 해결해야 할 일"이라면서 "행정부보다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고 법제화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과 비생산적 논란만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